한국사 공부

조선의 정치 3 (붕당 정치 2)

후니 NO.1 2022. 3. 1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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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붕당 정치의 전개

 

ㄱ. 선조(1567~1608)

① 초기

기성 사림의 신망을 받던 심의겸과 신진 사림의 지지를 받던 김효원 사이에 이조 전랑직의 대립으로 붕당이 발생하여

동인과 서인이 나뉜 후 처음에는 동인이 우세한 가운데 정국이 운영되었다.

② 동인의 분당

정여립 모반 사건(기축옥사, 선조22년 1589)과 정철의 건저의(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 상소문제 등이 계기가 되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었다.

㉠ 남인

온건파(정철의 귀양 주장)로서 처음에 정국을 주도하였으며, 학파적으로 이황계가 중심을 이루었다.

㉡ 북인

급진파(정철의 사형을 주장)로서 임진왜란이 끝난 뒤 집권하여 광해군 때까지 정국을 주도하였으며, 학파적으로 조식 계가 중심을 이루었다. 임진왜란 당시 북인은 의병을 일으키고 향촌 사회의 기반을 유지하여 전란이 끝난 뒤 집권하였다.

③북인의 분당(선조 32년, 1599)

홍여순(대북)이 대사헌으로 천거되자 정랑인 남이공(소북)이 반대하면서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분당되었다.

㉠ 대북

선조의 후궁인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인 광해군을 세자로 추대하였다.

㉡ 소북

선조의 계비인 인목 대비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세자로 추대하였다.

 

ㄴ. 광해군(1608~1623)

① 개혁 정치

광해군은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명과 후금 사이에 중립 외교를 전개하면서 전후 복구 사업을 추진했다. 또한, 국가의 재정 증대를 위해 양안과 호적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공납 제도를 대동법으로 개혁하였다.

② 북인의 정권 독점 시도

광해군의 지지 세력인 북인은 서인과 남인 등을 배제한 채 정권을 독점하려 하였다.

③ 광해군의 실정

불안정한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영창 대군을 살해하고 인목 대비를 유폐하여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았고, 무리한 토목 공사를 벌여 재정의 악화와 민심의 이탈을 불러왔다. 영창 대군은 선조의 계비인 인목 대비의 아들인 까닭에 후궁의 아들로 적통이 아니였던 광해군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④ 결과

광해군과 북인은 사림의 지지를 크게 상실하고 서인이 주도한 인조 반정을 계기로 정파로서의 기능을 영원히 상실하여 몰락하였다(1623).

 

ㄷ. 현종(1659~1674)

① 예송 논쟁

㉠ 배경

현종 때까지는 한 당파가 권력을 독적하는 것을 피하고, 상대 세력과의 공존을 인정하는 붕당 정치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관련하여 효종과 효종의 비가 각각 죽었을 때, 효종의 계모인 자의 대비가 상복을 몇 년 입느냐를 두고 두 차례의 예송이 발생하면서 서인과 남인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대신들의 주도 정치를 지향한 서인은 왕실도 사대부와 같이 주자가례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고, 왕권 강화를 추구한 남인은 왕실의 예는 사대부의 예와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 1차 예송(효종사망, 기해예송)

당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현종 1659). 서인은 기년설 (만 1년), 남인은 3년설

(만 2년)을 주장하였다.

㉢ 2차 예송(효종의 비 사망, 갑인예송)

꾸준히 세력을 키워 온 남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서인이 약화되고 남인 중심의 정국이 운영되었다(현종 1674).

서인은 대공설(9개월), 남인은 기년설(만 1년)을 주장하였다. 이때 남인은 서인을 정권에서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② 정국의 동향

남인의 우세 속에 서인과 공존하는 정국은 숙종 초(1680) 경신환국(2차 예송 이후 정계에세 밀려났던 서인이 남인을

역모로 몰아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유지되었다.

 

※정여립 모반 사건(기축옥사)

이이의 제자인 정여립이 일부 급진적인 동인과 승려,  천민, 평민을 끌어들여 진안 죽도에서 대동계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새 왕조를 세우려고 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사전에 발각되어 수많은 인사들이 처벌되었다.

 

※ 서인과 남인의 차이

구분 서인 남인
정치 대신이 주도하는 정치 지향
북벌 정책 추진
왕권 강화와 정책 비판에 큰 비중
북벌의 무모함 비판
경제 부국강병과 지주제 긍정
상업과 기술 발전에 호의적
수취 체제와 자영농 육성
상업과 기술 발전에 소극적
사회 노비 속량과 서얼 허통에 적극적 기존의 봉건적 신분 체제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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