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

임진왜란 1

후니 NO.1 2022. 3. 2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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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란 직전의 정세

 

ㄱ. 조선의 정세

(1) 조 · 일 관계의 변화

15세기에 비교적 안정되었던 일본과의 관계는 16세기에 이르러 대립이 격화되었다.

(2) 왜구 약탈 증가

일본인의 무역 요구가 더욱 늘어난데 대하여 조선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자, 이에 반발하여 일본인들은 중종 때의 3포 왜란(1510)이나 명종 때의 을묘왜변(1555)과 같은 소란을 자주 일으켰다.

 

☆을묘왜변

3포를 개항한 이후 왜인들은 약조를 지키지 않고 자주 소란을 피웠다. 특히, 1555년(명종 10년)에는 왜인들이 70여 척의 배를 몰고 전라남도 연안 지방을 습격 해왔다. 정부는 관군을 보내 이를 토벌하고 국교를 단절 하였으며, 군제를 제승방략 체제로 전환 하고 비변사를 상설 기구화 하였다.

 

(3) 정부의 대응책

조선으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 문제를 전담하게 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였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어 정세를 살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16세기 말 방수군포제(포를 납부하면 군역을 면제해 주는 제도)가 확대되면서 국방력은 더욱 약화되고, 이이의 10만 양병설(만언봉사)이나 일본 정세에 대한 인식에서도 붕당 간의 차이를 보이는 등 국론이 일치되지 않아서 적극적인 대책이 강구되지 못하였다.

 

ㄴ. 일본의 정세

 

16세기 무렵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00여 년에 걸쳐 봉건 영주들이 패권을 다투던 전국 시대(1467~1590)의 혼란을 수습하고 일본을 통일 하였다. 당시 명과 조선은 왜구의 약탈에 대한 응징으로 일본과 무역 관계를 거의 단절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는 동시에 국내의 불만 세력을 밖으로 돌려 정치적 안정을 기하고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조선의 산천과 지리 정보를 수집하고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조총(새도 쏘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의미)을 개량하는 등 조선 침략을 준비하였다.

 

2. 임진왜란의 발발

 

ㄱ. 왜군의 침략

일본은 조선 침략의 구실로 명을 정벌하러 가는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하였다. 조신이 이를 거부하자 일본은 잘 훈련된 20만 왜군과 조총으로 무장하고 1592년 4월에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정발부산진(1592.04)에서 항전하였으나 성은 함락당하였고, 송상헌동래성(1592.04)에서 분전 하였으나 끝내 함락되었다.

 

ㄴ. 육군의 참패

이후 왜군은 세 길로 병력을 나누어 한양으로 북상하였다. 이에 충주에서 신립이 배수진을 치고 싸웠으나, 무기와 전력의 열세로 관군은 참패하였다.

 

ㄷ. 왜군의 북상

왜군은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고 북상을 거듭하여 임진강 저지선을 무너뜨리고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까지 침입하였다. 전쟁에 아무런 대비책을 세우지 못한 조선은 전챙 초기에 왜군을 효과적으로 막아 낼 수 없게 되자, 선조는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난(1592.06~1593.01)가서 명에 원군을 요청하였다.

 

3. 수군의 승리

 

ㄱ. 왜의 수륙 병진 작전

왜군의 침략 작전은 육군이 북상함에 따라 수군이 남해와 황해를 돌아 물자를 조달하면서 육군과 합세하려는 것이었다.

 

ㄴ. 이순신의 활약

(1) 전란의 대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전라도 지역에서 전라 좌수영의 수군 절도사였던 이순신의 지휘 아래 전함과 무기를 정비하고, 군사 훈련을 강화하며 왜군의 침략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었다.

 

(2) 수군의 승전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80여 척의 배를 거느리고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어, 사천(거북선을 이용한 최초의 해전), 당포(충무), 당항포(고성) 등지에서도 연승을 거두었다.

 

(3) 한산도 대첩

왜군이 총공격을 가해오자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 전법으로 대파하였다.

 

(4) 의의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남해안에서 승리를 함에 따라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여 곡창 지대인 전라도 지방과 서해 연안의 수송로를 지켜냈으며, 평양과 함경도 일대로 더 이상 왜군이 진격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 임진왜란의 3대첩

한산도 대첩(이순신 1592.07), 행주 대첩(권율 1593.02), 진주 대첩(김시민 1593.10)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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