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학 농민군의 봉기
ㄱ. 교조 신원 운동
(1) 목적
동학의 교세가 확장되고 동학 교도들의 활동이 활발해져 동학이 커다란 사회 세력으로 확대되자, 동학 교도들은 1892년부터 충청도 공주, 전라도 삼례, 서울 등지에서 대중 집회를 열고, 처형당한 교조 최제우릐 억울한 누명을 풀어 줄 것과 동학에 대한 탄압을 금지하고, 포교의 자유를 인정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2) 교조 신원 운동의 전개
㉠ 삼례 집회(1892. 11)
제1차 신원 운동으로 전라도 삼례역에서 손천민의 지휘 하에 교조 최제우의 죽음에 대한 신원의 복위와 동학 교도에 대한 지방관의 탄압을 중지하고, 신앙의 자유를 인정할 것과 관리들의 부당한 수탈을 중지할 것 등을 충청 감사 조병식과 전라 감사 이경직에 호소하였다. 그러나 교조의 신원은 양도 감사의 거부로 실패하였다.
㉡ 복합 상소(1893. 2)
제 2차 신원 운동으로 박광호, 손병희 등 40여 명의 교도가 상경하여 궁궐 앞에서 엎드려 국왕에 교조 신원을 상소하였으나 실패하였다.
㉢ 보은 집회(1893. 3)
복합 상소도 무산되고 동학 교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충청도 보은에서 동학 교도와 일반 농민이 참가한 대규모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종교적 요구 외에도 탐관오리의 처벌, 일본과 서양 세력의 축출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를 내세웠다. 보은 집회는 정부의 탄압과 회유로 해산되었지만, 이를 계기로 동학 교도와 농민들은 동학 중심의 종교 운동을 농민 중심의 정치 운동으로 전환시켜 갔다.
◎교조 신원 운동
동학의 교조 최제우가 처형된 후 그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고 동학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동학 교단에서 벌인 합법적 운동으로, 삼례 집회(1892), 서울에서 복합 상소(1893), 보은 집회(1893)가 이에 해당한다. 초기의 교조 신원 운동은 종교 운동의 성격을 띠었으나, 1893년 보은 집회 때부터는 종교적 요구뿐만 아니라, 정치적 요구도 내세웠다.
◎ 척왜양 구호의 전면 등장
충청도 보은과 전라도 금구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척왜양 구호가 전면에 제기되었다. 특히, 금구 집회에서는 서울로 올라가 탐관오리를 축출하고 일본인과 서양인을 물리치겠다는 계획까지 구상하였다. 두 집회는 정부의 탄압에 굴복하여 해산하였지만, 이후 변혁을 꿈꾸는 자들은 전하도 전역에 걸친 농민 봉기를 계획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봉준, 김개남 등이 활동하고 있던 전라도 고부, 태인 등지에서 가장 먼저 시작 되었다.
ㄴ. 동학 농민 운동의 전개
(1) 고부 농민 봉기(고부 민란의 시기)
㉠ 원인
전라도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인 고부에서는 군수 조병갑의 비리와 학정이 매우 심해 농민들은 항상 가혹한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1892년 고부 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은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불필요한 만석보를 다시 쌓게 해 고율의 물세를 징수하고, 부친 비각 건조비와 황무지에 대해서 강제 징수하는 등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아 자신의 재산을 늘렸다. 이를 계기로 동학 농민 운동은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첫 깃발이 오르게 되었다.
㉡ 경과
농민들은 고부 지방의 동학 접주였던 전봉준을 내세워 조병갑의 탐욕스럽고 포악함을 바로잡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전라 감사가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전봉준은 사발통문을 돌려 동지를 모은 다음 1천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고부 관아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수탈에 앞장선 아전들을 처벌하였으며, 조세 장부를 불사르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던 백성들을 풀어주었다. 또한 농민들은 창고를 열어 불법으로 거둔 곡식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원성이 높았던 동진강의 만석보를 파괴해 버렸다.(1984. 1. 10)
㉢ 정부의 대응
놀란 정부가 전주 감영으로 피신한 조병갑을 불러 올려 파면하고, 박원명을 군수로 내려 보냈다. 신임 군수 박원명으로부터 잘못된 부분을 고치겠다는 다짐을 받은 농민들은 10여 일 만에 자진 해산하였다. 그러나 봉기를 조사하러 온 안핵사 이용태는 정부가 사교로 금지한 동학의 교도들이 봉기에 참여했다며, 농민 봉기 관련자들을 동학교도로 몰아 가혹하게 처벌하였다.
◎ 사발통문
1893년 11월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 등 20명이 농민 봉기를 약속하며 작성한 통문이다. 호소문이나 격문을 쓸 때 주모자가 누군지 알 수 없도록 봉기에 동의한 사람들의 이름을 둥근 사발 모양으로 서명하여 '사발통문' 이라고 한다. 고부성과 진주성을 함락시키고 서울로 진격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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