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재정비와 이동
ㄱ. 재정비의 전기
국민대표회의(1923) 실패 이후 어려움을 겪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이봉창의 일왕 저격 의거(1932. 1)와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1932. 4)를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ㄴ. 임시 정부의 이동
그러나 윤봉길 의거 이후 일제의 공격이 강화되자 이를 피해 상하이(1919)를 떠나 저장성 항저우(1932)로 이전하였다. 이 시기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중국 국민당의 원조금과 미주 지역의 교민들이 보낸 애국 의연금으로 재원을 마련하였다. 중 · 일 전쟁 중(1937) 일본군이 항저우를 침략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난징 → 항커우 → 창사(1937) → 헝양 → 광저우(1938) → 류저우(1938) → 구이양(1939) → 치장(1939) 거쳐 여러 곳을 이동하며 1940년 국민당 정부를 따라 쓰촨성 충칭(1940. 9)에 정착하였다.
2. 김구의 다른 선택
ㄱ. 항일 민족 연합 전선
적극적인 대일 항전을 펼치기 위해 중국 내지에서 활동하고 있던 독립 운동 단체들이 조선 민족 혁명당 중심으로 통합 움직임이 있었다.
ㄴ. 한국 국민당 창당(1935)
김구는 조선 민족 혁명당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해체 주장에 반대하고, 임시 정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 국민당을 따로 창당하였다.
ㄷ. 한국 광복 운동 단체 연합회 결성(1937)
한국 국민당은 삼균주의에 입각한 민주 공화국 건설을 목표로 무장 투쟁을 독립 운동 방약으로 채택하였다. 그 후 중 · 일 전쟁(1937)이 일어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민족 혁명당을 탈당한 한국 독립당, 조선 혁명당 출신의 일부 인사들과 함께 민족주의 계열의 연합체인 한국 광복 운동 단체 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이로써 중국 관내의 민족 운동 세력은 한국 국민당과 조선 민족 혁명당으로 나뉘게 되었다.
3. 한국 독립당 결성과 충칭 정착
ㄱ. 한국 독립당 결성(1940. 5)
한국 광복 운동 단체 연합회에 참여한 인사들은 단결을 강화하고 단일한 민족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중국 관내에서 활동하던 민족주의 계열 3개 정당인 한국 독립당(조소앙), 한국 국민당(김구), 조선 혁명당(지청천)을 해산하고, 김구를 위원장으로 하는 한국 독립당을 새롭게 결성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여당 역할을 하였다.
ㄴ. 좌익 계열의 참여
때마침 좌익 계열인 김원봉의 조선 민족 혁명당(의열단 인사들이 민족 혁명당을 주도하자 1935년 조소앙, 지청천이 탈당하고, 1937년에 조선 민족 혁명당으로 개편) 인사들(1942년 김규식, 장건상 등이 임시 정부에 참여)과 다른 사회주의 계열 단체의 인사들도 임시 정부에 합류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중국 본토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단체들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이후 임시 정부는 좌익 독립운동 단체인 조선 독립 동맹과도 통일 전선을 위해 교섭했으나 성사 직전 일본의 항복으로 중단되었다.
○ 민족주의 계열 3개 정당 민족 혁명당에 불참한 김구 등 임시 정부 고수파들이 만든 한국 국민당, 민족 혁명당에서 탈당한 조소앙이 다시 재건한 한국 독립당, 역시 민족 혁명당에서 탈당하여 지청천이 조직한 조선 혁명당을 말한다. |
ㄷ. 충칭 정착(1940. 9)
중국 국민당 정부의 주선으로 충칭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헌법 개정을 통해 국무 위원제를 주석제로 바꾸고, 김구 주석 중심의 단일 지도 체제를 마련하여 독립 전쟁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강력한 구심점을 세웠다.
4. 직할 부대 창설을 위한 노력
ㄱ. 일제의 중국 침략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숙원 사업이었던 한국 광복군의 창설을 시도한 것은 중 · 일 전쟁 이전부터였으나, 본격화 된것은 1937년에 일제가 중 · 일 전쟁을 일으켜 중국 본토를 위협한 이후였다.
ㄴ. 군사 위원회 설치
중 · 일 전쟁이 지속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일제와의 최후 일전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군무부에 군사 위원회를 설치하여 군사 작전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항저우 침략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군사 작전은 추진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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