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한 제국의 성립(1897)
ㄱ. 국내외 여론
국왕이 궁궐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에서 1년 동안이나 머무르면서 국가의 자주성이 손상되고, 각종 이권이 러시아 · 미국 · 프랑스 등 열강에게로 넘어가자, 시민들과 독립 협회는 물론 최익현 등 유생들이 국가 체면과 자주성 회복을 내세워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였다. 또한, 조선에서 러시아의 세력 독럼을 견제하는 국제 여론도 조성되었다.
ㄴ. 고종의 환궁
이러한 국내외의 여론 속에서 고종은 친위대가 궁궐을 경비할 수 있게 된 아관 파천 1년 만인 189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현재 덕수궁)으로 환궁하자,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에서 벗아나 자주독립 국가임을 대내외에 과시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당시 러시아와 일본 모두 한반도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세력 균형을 이루게 되어 외세의 간섭도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ㄷ. 대한 제국 수립 · 선포
이러한 국내외적 상황에서 고종은 실추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1897년 8월 광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정하고, 10월에 환구단에 나아가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국호를 대한 제국이라 선포하였다.
ㄹ. 자주독립국 천명
대한 제국은 만국 공법에 기초한 자주독립국임을 천명하였으며, 일본과 중국, 러시아, 프랑스를 비롯한 서양 열강이 승인을 하였다.
2. 광무 개혁
ㄱ. 개혁 방향
자주 독립을 선언한 대한 제국의 집권층은 그동안의 갑오 · 을미개혁이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외세 의존적이었던 점을 반성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였다. 광무 정권의 시정 방향은 "옛 제도를 근본으로 하고 새로운 제도를 참작한다." 구본신참이었다. 이는 다분히 복고주의적 성격을 띤 것이었다.
ㄴ. 개혁 기구
정부는 법률 · 칙령의 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한 교정소라는 황제 직속 특별 입법 기구를 설치하였다.
ㄷ. 정치 분야
(1) 전제 황권 강화
황제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황실의 재정을 확충할 수 있게 하는 전제 군주권을 강화시켰다. 따라서 광무 정권은 입헌 군주제와 의회 설립을 주장하는 독립 협회의 정치 개혁 운동을 탄압하였다. 고종은 초기에 독립 협회에 우호적인 모습도 보였지만, 민권을 확대하고 체제 개혁을 확대하자는 독립 협회와 만민 공동회의 운동이 황권을 약화시킬 것이라 우려해 독립 협회를 해산(1898)시킨 다음, 황제 직속의 법규 교정소를 설치하여 만국공법에 준해 대한국 국제를 반포하였다.(1899. 8)
(2) 대한국 국제 제정
광무 정권이 일종의 헌법으로 제정한 대한국 국제는 '대한 제국은 세계 만국이 공인한 자주 독립국'이며, 황제가 무한한 권리를 가지는 전제 정치를 실시한다는 점을 명문화하였다. 이 법제에서 대한 제국은 만세불변의 전제 정치 국가임을 천명하며, 육해군 통수권을 비롯하여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외교권, 인사권 등 모든 권한을 황제의 대권으로 규정하였다.
(3) 전제 군주 체제 강화
황제권 강화 작업의 일환으로 원수부를 설치하여 황제가 대원수로서 국방과 군사에 관한 명령을 직접 장악하였다. 또한, 황실 산하에 경위원을 별도로 두어 일본 망명객들과 그들과 연계된 국내 세력의 정변을 예방하려 하였다. 반면, 신민에 대해서는 황제권에 복종할 의무만 규정하였다.
ㄹ. 경제 분야
(1) 내장원 기능 확대
황실 재정 기관인 내장원은 그동안 홍삼 전매권, 역둔토 소작료 등 정부의 주요 재원으로 별도로 분리되어 있던 많은 정부 재정을 황실 재정으로 흡수하였다. 또한, 전환국을 통해 백동화를 대량으로 발행하여 근대화 정책의 재원으로 삼았다.
(2) 정부 재정 확보책
정부 재정이 황실 재정으로 흡수되자 수입원이 줄어든 정부는 재정 적자 상태를 보충하기 위하여 지세를 담보로 내장원에 대규모 자금을 차용하였다. 내장원은 대출금을 직접 환수하기 위해 지방에 관리를 파견하여 지세를 징수하였는데, 지세 징수 과정에서 관리들은 지방관과 갈등을 일으키고 백성을 수탈하여 원성을 샀다.
(3) 양전 사업 실시
대한 제국 정부는 과거의 누적된 폐단의 하나인 전정을 개혁하여 민생을 안정시키고, 전국의 토지를 조사해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양전 사업을 실시하였다. 1899년부터 5년간 전국 토지의 절반 이상을 측량하여, 토지 소유자에게 소유권 증명서인 지계를 발급하였다. 이는 국가가 개인의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인정한 것이었다. 양전 사업은 러 · 일 전쟁 발발 직전에 중단되었지만, 토지 소유권을 법적으로 확인하고, 조세 수입을 늘리는 역할을 하였다.
◎ 지계 대한 제국 정부가 조세 수입을 늘리고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확립하기 위해, 1898년에 양지아문을 설치하고 발급한 토지 소유 증명서를 말한다. 근대적 토지 소유권이란 토지의 명분상 소유주와 실제 소유주를 일치시키고, 토지를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도록 한 권한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계는 개항장 이외의 외국인 토지 소유를 금지하여 외국인의 토지 침탈을 막는 성과도 거두었다. 지계를 통해 실제 경작 농지의 넓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 정부는 재정 수입을 늘릴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