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 1대 태조(1392~1398)
(1) 조선 건국의 정당성 강조
조선을 건국한 신진 사대부와 태조는 여러가지 제도를 정비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 고려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새 국가가 하늘의 명을 받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세워졌음을 강조하고, 모든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켜 통치 질서를 확립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켜 나갔다.
(2) 국호 제정과 천도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선포하여 고조선의 후계자임을 자처하고, 새 나라의 면모를 갖추기 위하여 교통과 국방의 중심지인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다(1394).
한양은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강을 통해 전국의 물자를 모을 수 있어 수도로서 적합하였다. 이로써 고려의 구질서를 유지하면서 재상 주도의 도평의사사(의정부 서사제)중심 체계를 갖추었다.
(3) 3대 정책
ㄱ. 외교 정책
명나라에 대해서는 사대 외교 정책을 취하고, 왜와 여진에 대해서는 대등한 입장에서 교류하여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는 교린을 취하였다.
ㄴ. 숭유억불
새로운 지배층이 된 신진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사상적 기반이었던 성리학을 새 왕조의 기본 통치 이념으로 삼아, 유교 정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여러 제도와 의례를 유교적으로 정비하였다. 그리고 사원의 남설(마구잡이식 설치)을 금지하고 도첩제(허가증)를 실시하여 불교를 억압하였다.
ㄷ. 민본정치
민생의 안정에 바탕을 둔 통치 규범을 확립하기 위해 정치에서 재상의 역할을 중시 하고 6전(이, 호, 예, 병, 형, 공) 체제를 마련하였다. 지방행정(속현, 향, 소 부곡 폐지)과 교육 제도(성균관, 향교 설치)를 개편하고, 토지개혁(사전 혁파, 병작 반수제 금지)을 통하여 민본 정치를 펼쳤다.
(4) 군제 개편
군사 최고 기관인 의흥삼군부를 설치하여 중추원의 기능을 무력화 시키고 도평의사사를 약화 시켰다.
(5) 수도의 기틀 마련
한양에 도성을 쌓고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 종묘, 사직, 관아, 학교 시장, 도로 등을 설치하여 도읍의 기틀을 다졌다.
(6) 정도전의 제도 정비
건국 초에는 정치 사회적 안정과 왕권의 안정이 급선무였는데, 이때 제도 정비에 앞장선 사람은 정도전이였다.
그는 「조선 경국전」, 「경제문갑」을 통하여 민본적 통치 규범을 마련하고 재상 중심의 정치를 주장하였다.
또한, 「불씨잡변」과 「심기리편」을 통하여 불교를 이론적으로 비판하면서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확립 시켰다. 이처럼 태조 때에는 정도전 조준 등을 비롯한 소수파 공신들의 주도로 재상 중심의 정치 체제가 갖추어졌다.
※ 막간 상식
4대문과 4소문
도성의 4대문에는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소지문(숙정문·북문) 등이 있으며, 4소문에는 소의문(서소문), 창의문(북소문), 혜화문(동소문), 광희문(남소문) 등이 있다.
2. 제 2대 정종(1393~1400)
(1) 개경천도
왕자의 난과 자연 이변 등을 피하기 위하여 개경으로 천도하였다. 이후 태종 때 한양으로 재 천도하였다.
(2) 군제 개혁
도평의사사를 완전히 폐지하고 의정부를 세웠고, 중추원도 폐지하여 직무를 의흥삼군부에 소속시켰다.
(3) 태조 때 완성된 의학서인 「향약제생집성방」을 간행하고, 노비변정도감을 설치하여 불법으로 빼앗은 노비를 본 주인에게 환원시키거나, 노비의 신분이나 상속관계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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