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

광해군의 중립외교

후니 NO.1 2022. 3. 2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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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해군의 중립 외교

ㄱ. 대륙 정세의 변화

(1) 후금 건국

임진왜란을 겪는 동안에 조선과 명의 힘이 약화된 틈을 타서 압록강 북쪽에 살던 건주위 여진의 추장 누르하치가 만주 지역에 흩어져 있던 부족을 통일하고 후금을 건국하였다.(1616)

(2) 명의 원군 요청

계속하여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후금은 쇠약해진 명에 대하여 전쟁을 포고하였다. 이에 명은 후금을 공격하는 한편 조선에 원군을 요청하였다.

 

ㄴ. 광해군의 실리 외교

(1) 전후 복구 정책

왜란 중에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던 대북파가 그 여세를 몰아 광해군을 추대한 후 권력을 잡아 북인 정권을 성립시켰다. 왜란 후 피폐해진 국내 사정과 후금이 새롭게 성장하는 국제 정세의 변동 속에서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전쟁의 뒷수습을 하고 민생과 국가의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들을 실시하였다. 농지 개간을 장려하고, 토지 조사 사업과 호적 조사를 새롭게 하여 국가 재정을 확충하였고, 현물로 내던 공납을 쌀로 내게 하는 대동법을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시행하여 농민들이 부담을 줄여 주었다. 그리고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편찬하게 하고, 불타버린 사고를 다시 갖추었다.

(2) 중립 외교 정책

임진왜란 때 명의 도움을 받은 조선은 명의 후금 공격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고, 새롭게 성장하는 후금과 적대 관계를 맺을 수도 없었다. 이에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신중한 중립 외교 정책으로 대처하여, 군대는 출병시키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였다. 또한, 성곽(남한산성)과 무기를 수리하고 군사를 훈련시켜 국방력을 강화하였다.

(3) 강홍립의 출병과 항복

광해군은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1만 3,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명을 지원하게 하되 적극적으로 나서지 말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도록 명령하였다. 결국 조 · 명 연합군은 후금군에게 패하였고, 강홍립과 김경서가 후금의 누르하지에게 항복(1619) 함으로써 후금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 할 수 있었다.

(4) 실리 정책 지속

이후에도 명의 원군 요청은 계속되었지만 광해군은 이를 적절히 거절하면서 후금과 친선을 꾀하는 중립적인 정책을 취하였다. 이와 같은 중립 외교로 광해군 때는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2. 호란의 발발과 전개

ㄱ. 정묘호란(인조 5년, 1627)

(1) 원인

㉠ 친명 배금 정책

광해군과 대북의 권력 독점에 반발한 서인은 광해군이 중립 외교 정책을 시행하고 인목 대비를 유폐시키자, 명을 배신하고 유교 윤리를 어겼다는 이유로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과 북인 정권을 몰아내고 능양군인 인조를 즉위시켰다.(1623)

인조 반정으로 정권을 장악한 서인 정권은 명에 대한 의리와 명분을 강조하면서 후금을 배척하는 친명 배금 외교 정책을 추진하여 후금을 자극하였다.

㉡ 가도 주둔(1622)

청에 의해 심양과 요양이 함락된 이후 명의 장군 모문룡이 남은 병력을 이끌고 평안도 청산 앞바다에 있는 가도에 주둔하고 있던 차에 조선의 서인 정원이 친명 정책으로 모문룡을 지원하였다.

㉢ 이괄의 난(1624)

인조반정 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동조하던 무리들이 후금과 내통하여 인조의 즉위가 부당하였다고 모함하였다.

(2) 경과

㉠ 후금의 침입

조선이 후금에 적대하는 정책을 취하자, 후금은 이괄의 난으로 조선 사회가 혼란해진 틈을 타서 광해군을 위하여 보복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침략하였다. 이를 정묘호란 이라고 한다.(1627)

㉡ 항전

평안도 의주를 거쳐 황해도 평산까지 쳐들어 왔으나 의병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철산 용골산성의 정봉수와 의주의 이립등은 이병을 일으켜 관군과 합세하여 적을 맞아 싸웠으며, 특히 용골산성의 정봉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로 인해 보급로가 끊긴 후금은 조선에 화의를 제의하였다.

(3) 결과

본래 후금의 1차적인 목표는 중국 대륙의 장악에 있었고, 조선도 아직 적극적으로 항전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쉽게 화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로써 후금과 조선은 형제 관계를 맺고 후금의 군대는 철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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