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족 말살 정책
ㄱ. 실시 목적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을 실시한 목적은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철저히 말살하고 일본인으로 동화시켜 일제의 각종 침략 전쟁에 조직적으로 동원하기 위해서였다.
ㄴ. 황국 신민 강요
1936년에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미나미는 1937년 중 · 일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내선일체'를 강조하면서, 한국인을 일본의 '천황'에게 충성하는 백성으로 동화시키려는 황국 신민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ㄷ. 내선 일체
내는 내지인 일본, 선은 조선을 가리킨다.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뜻으로,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 하였다. 이는 조선인이 민족의식을 철저히 말살하고 일본 제국의 신민으로 만들려고 한 것이다.
(1) 황국 신민 서사
"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이다.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한다."는 내용을 암송하게 함으로써 우리 민족을 황국 신민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2) 신사 참배
전국의 각 읍과 면마다 일본 왕실의 조상신이나 국가 유공자의 위폐를 모아둔 신사를 하나씩 지어 놓고, 일왕의 궁성을 향하여 한국인에게 참배할 것을 강요하였다.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사람은 처벌하였고, 학교의 경우 폐교시켰다.
(3) 소학교 명칭 변경
소학교의 명칭도 '황국 신민의 하교'라는 의미로 '국민학교'로 바꾸고(1941), 학생들을 길들이기 위해 수신 교과를 강화하였다. 이어서 모든 교육 기관의 수업 연한을 단축시키고, 군사 훈련을 실시하였다.
ㄹ. 일본식 성명 강요
1939년 12월에 공포된 조선민사령을 통해 1940년 2월부터 우리 성과 이름을 일본식 성명으로 바꾸도록 강요하였다. 이를 거부할 경우 자식을 학교에 보낼 수 없었고, 식량 배급도 받지 못하였다.
ㅁ. 우리말과 글 사용 금지
일제 강점 이후부터 '국어 사용'을 내세우며 일본어 쓰기를 강요했던 일제는 중 · 일 전쟁 이후 민족 말살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우리말과 글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제3차 교육령(1938)을 공포하여 학교 수업에서 조선어 과목을 사실상 폐지하였으며, 수업도 일본어로만 하게 하였고, 관공서에서도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심지어 어린 학생들에게 서로 감시하게 하여 우리말을 쓰다가 들키면 벌을 주기도 하였다. 1941년에 들어와서는 한국어 학습이 학교에서 완전히 폐지되었다.
2. 주민 통제와 전시 동원 체제 구축
ㄱ. 전시 동원 체제 구축
중 · 일 전쟁(1937) 이후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전시 동원 체제로 재편하였다. 먼저 총독부는 조선인의 사상을 철저히 통제하고 일제의 침략 정책에 협력시키기 위해 국민정신 총동원 연맹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지원병이나 국방헌금을 독려하였고, 일본식 성명을 강요하거나 폐품 수집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1940년대에는 전쟁 동원 체제가 더욱 강화됨에 따라, 전국적으로 조직된 반상회를 통해 한국인들은 일장기 게양, 신사 참배, 일어 사용, 애국 저금 등을 강요당하였고, 각종 명목의 애국 행사에 강제로 동원되기도 하였다.
ㄴ. 애국반 조직
국민정신 총동원 연맹은 행정 체계를 갖추어 중앙 및 지방 조직으로 구성되었으며, 말단의 리 단위에는 10호를 단위로 애국반을 만들었다(1938). 이로써 모든 조선인은 애국반에 소속되어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서 통제와 감시를 받고, 세뇌 작업에 시달리게 되었다.
3. 침략 전쟁을 위한 인적 · 물적 자원의 수탈
ㄱ. 인력 수탈
(1) 국가 총동원법
1930년대 이후 일제는 침략 전쟁을 확대하고 우리나라를 병참 기지로 이용하려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수탈 정책을 강화하였다. 1937년 중 · 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1938년에 의회의 승인 없이 물자와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 · 공포하여 인적 · 물적 자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탈하였다.
(2) 병력 동원
전투 병력 동원이 시급하였던 일제는 우리 민족을 침략 전쟁에 조직적으로 동원하였다. 1938년에 지원병제 형태로 청년들을 전쟁에 끌어 들였고, 1943년에는 학도 지원병제를 실시하여 학생들을 전쟁에 동원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에는 징병제를 실시하여 20만 명이 넘는 청년들을 전쟁터의 병사로 동원하였다.
(3) 노동력 강제 수탈
군수 산업에 종사할 노동자의 확보를 위해 1939년에 국민 징용령을 실시하여 수많은 한국인 청장년들을 일본 · 중국 · 사할린 · 동남아시아 등지로 끌고가서, 탄광 · 광산 · 건축 공사장 · 토목 공사장 · 군수 공장 · 항만 · 군용 비행 활주로 공사 등에 투입하여 노예처럼 혹사시켰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 징용된 노무자 수는 대략 70여 만 명을 헤아렸다.
(4) 여성 노동력 징발
처음에는 여성을 임의로 침략 전쟁에 동원하였으나, 전쟁 막바지인 1944년에는 여자 정신 근로령을 공포하여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한국 여성들을 동원하여 군수 공장에서 일하게 하였다. 일제는 이미 1930년대 초부터 군 위안소를 설피 하여 우리나라 여성들을 징발하였으며, 전쟁 말기에는 조직적으로 많은 여성들을 징발하여 일본군 위안부로 이용하였다. 어린 학생들마저 근로 보국대(1941)라는 조직을 만들어 전쟁 물자 조달에 동원하였다.
(5) 인력 수탈의 영향
일제의 인력 수탈은 국내에 남아 있는 노동자와 농민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쳐, 노동자들은 장시간의 노동과 낮은 임금에 시달려야 하였으며, 소작농들은 고율의 소작료로 어려운 삶을 이어갔다.
ㄴ. 물자 수탈
(1) 산미 증식 계획 재개
군수 공업 원료가 되는 지하자원은 물론 식량에 대한 수탈도 한층 강화하였다. 군량미를 확보하기위해 중단되었던 산미 증식 계획을 재개(1938)하여 각 지방과 개인에게 증산량을 할당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이후 일제의 인적 수탈로 인한 농민 수 감소로 농업 생산량이 급격하게 낮아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식량 증산은 우리나라 농민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였다.
(2) 식량 강제 공출
일제는 태평양 전쟁으로 식량 사정이 악화되자 1942년 조선 식량 관리령을 발표하여 자가 소비량을 제외한 쌀의 전량과 잡곡까지 공출하여 전체 농산물 생산량의 40%~60%를 강제로 빼앗아 갔다. 전쟁 막바지에는 식량 배급제를 시행하여, 한국인의 식량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3) 금속류 강제 공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수탈을 더욱 강화하여, 전쟁에 필요한 무기와 물자를 만드는 원료를 조달하기 위해 구리와 고철 등의 금속을 강제로 공출하였다. 학교의 철문, 사찰과 교회의 종, 불상, 농기구, 가마솥, 놋그릇, 수저, 제사 도구 등을 가져가 전쟁 무기를 만드는데 이용하였다.
4. 친일파의 활동
ㄱ.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유형
일제의 식민지 침략이 본격화된 러 · 일 전쟁(1904) 이후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약 40년 동안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은 을사늑약(1910) 등 일제의 강점 과정에 적극 참여한 매국노를 비롯하여, 일제의 식민 통치 기간에 일제의 권력기구에 몸담은 고위 관료 · 경찰 · 군인 · 판검사 등의 부일 협력자,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한 자본가 · 지주 · 교육자 · 종교인 · 언론인 · 문인 · 예술가 등 지식인층이 널리 포함되었다.
ㄴ. 이광수, 최남선
철저한 일본인화를 내세워 민족적 가치를 부정하면서 "조선은 도저히 독립할 수 없으며 조선인은 일본을 맹주로 하는 대동아 공영권에 참가하여 이등 국민으로서 지위를 높이는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청년들을 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면서 우리 민족도 일본 국왕의 적자 노릇을 할 기회가 왔다고 환영하였다.
ㄷ. 군용기 헌납
중 · 일 전쟁이후 일제가 대대적인 국방헌금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일제와 협력 관계에 있던 각 지역의 유지들은 국방헌금을 내는데 앞장섰다. 특히, 전국적으로 비행기 헌납 기성회를 조직하여 박흥식(화신 백화점 사장), 김연수 등 친일 부호들은 국방헌금을 내거나 군용기를 사서 헌납하였다.
ㄹ. 일제 침략 찬양
일제는 친일 인물들로 하여금 친일 단체를 조직하여 일제의 식민 통치를 찬양하게 하였다. 서정주, 노천명, 묘윤숙 등의 문인들은 일제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징병과 징용을 독려하는 글을 작성하여 한국인들이 적극 동참할 것을 선전하였다. 김활란 등 일부 교육계 인사들은 학생들에게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며 협력을 권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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